내 두 명밖에 없는 티친(티스토리친구)들이 모두 엠벼이야기를 하여서 나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의 MBTI 역사라는 것이 한국에서 이 간악한 테스트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해 있었고... 한 번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시간은 무려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리고 총명한 real 천재였던 베이비 핫도그는 도 단위의 수학 영재원에 다니게 된다. (내가 그런 걸 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구라같다) 뭐 별 거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경북 도내 내로라하는 수학 실력의 초딩들이 모여서 주말마다 기묘한 수학 지식들을 배우는 문화센터같은 개념이었음
나름 경쟁률도 빡세고 시험도 치고 했다. 1차 수학 실력 테스트만 통과하면 2차는 창의력 시험이었는데, 나는 그 때도 오타쿠였어서 그걸 선생님들이 높게 봐 주지 않았나 싶다;
내가 그 기관을 3년 정도 다녔는데 여기가 첫 주에 가면 무조건 MBTI 검사를 했음
그 땐 그게 엠벼인 줄도 모르고 그냥 하라니까 했는데
성격이 하루 걸러 하루씩 바뀌는 못말리는 초등학생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비핫도그는 3년 연속 동일 결과를 받는 기행을 벌인다
그렇게 천재의 위대한 인팁 역사가 시작된다...
핫초딩은 사실 INTP라는 문자열을 기억하지는 못했고 내가 받아들인 결과는 '아이디어 뱅크형' 이었다. 님은 사회성도 떨어지고 지 하고싶은 것만 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데 대가리는 좀 ㄱㅊ으신거 같네요? 정도로 읽혔음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으하하 하고 웃으면서 봤다.
그리고 3년 연속으로 ㅈㄴ 극단적인 INTP 결과를 받고 영재원 시험을 더 이상 응시하지 않게 됨 (아마 밴드부 활동 시작했을 즈음인 듯... 주말 연습이 있었어서)
생각해 보면 인팁됨과 별개로 나는 항상 극단적인 인간이었다...
밴드 연습을 졸라 열심히 해서 혼자 악기 네 개를 돌아가면서 하며 덩기덕 쿵 더러러러 하며 코러스까지 넣은 해와, 영어학원 숙제를 1년간 단 한 페이지도 하지 않아서 책걸이를 하기 전 주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책을 들켜 엄마와 원장쌤한테 뒤지게 두들겨맞은 해와, 하지만 난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진로를 틀었던 해와 앙상블 스타즈를 시작해서 폰 안 내고 화장실에서 이벤트 뛰던 해가 모두 2015년이다
성격검사 좀 극단적으로 나온다고 신기해할 건 아닌 듯...
이후로도 공공기관이든 인터넷이든 가끔 MBTI 검사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한 번도 빠짐 없이 욘나 극단적인 인팁이 나온다
그래서 엠벼 유행이 오기 전부터 나는 아이엔티피구나... (그 땐 인팁이라 줄여 부르기도 전이었으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온다...
거대한 엠벼의 유행이 다가오는 시기 나는 휴학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휴학 이후로 다시는 학교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슈뢰딩거의 자퇴 시기라고 볼 수 있겠다
방금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보고 왔는데 네이버웹툰 MBTI 특집이 2020년 여름에 나왔으니, 그 해 즈음에 엠비티아이 유행이 시작된 게 맞는 듯
그리고 인팁에게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만다
바로 네이버웹툰의 모든 싸이코패스빌런악역캐릭터들이 INTP로 밝혀진 것...
이 일이 소녀에게 얼마나 공포스럽게 다가왔겠는가... 나는 나랑 같은 쓸데없는 정보를 가진 캐릭터들이나 인물들을 보면 진짜 아무 이유 없이 기뻐지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에리오스 라이징 히어로즈를 플레이 반 년 만에 접었음에도 매년 디노알바니 군의 생일 축하를 잊지 않고 있고 (당연함, 내 생일임) 생일이 하루 차이난다는 이유로 엔시티 드림의 런쥔 군이 꽤 호감이었고 오늘도 장도연 씨에게 저희 둘다 ㅈㄷㅇ이니까 서로 화이팅해요 하고 디엠을 보내고 오는 길인데
이 망할 놈의 웹툰 캐릭터들은 INTP를 찾으면 하나같이 싸패빌런악역인 것이다
내 생각에 인팁이 싸패라는 인식은 네이버웹툰 때문에 퍼진 거임
이게 다 네이버웹툰 때문이다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나한테
다행인 건 나는 그 때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 과외를 했었음) 꽤나 철이 들어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내가 I 100%가 나오면 뭐 어쩌겠나 그럼에도 애들 보면 안뇽~!!~!!~!!!!! 하는데...
거기다 이제 사람이 INTP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어디인가? 바로 트위터다... 분명 INTP는 일상에서 보기 힘든 유형이라고 하는데 망할 놈의 오타쿠들은 절반 정도가 인팁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본 인팁의 대부분은 등신들이었고 (진짜 미안 나는 씹혐을 해) 나는 이 성격 유형에 어떠한 소속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MBTI 유행이 5년만 일찍 왔으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철도그가 이 유행을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5년 일찍 와 주지 않아서 너무 고맙다 요새 또 유행한다는데 감사 받은 김에 빨리 사라졌으면
그렇게 코로나 시기를 지내고... 나는 취직을 하고 자퇴를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고
MBTI와 관련된 가장 최근 사건은 2년 전 회사에서 MBTI 워크샵이라는 것을 한 것이다
MBTI 워크샵이란? 공포의 MBTI 적성검사... 팀원 전체가 엠벼 검사를 해서 우리 팀에 알맞지 않은 엠벼는 내쫓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팁이 나오면 우리는 싸이코패스와 함게 일할 수 없으니 권고사직을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고
그냥 MBTI 검사 하고 시덥잖은 이야기들 하는 친목회인 거임
P두명 J두명 테이블에 앉혀 놓고 휴양지에 놀러갔는데, 2일차 때 비가 내려서 계획해 둔 리조트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요? 같은 질문 하고 토크를 한다거나... 참고로 이 질문에 대한 J들의 답은 '비 올 때를 대비한 계획도 세웠을 것'이고, P들의 답은 '휴양지 가는데 계획을 왜 세우냐' 였다.
이 검사가 재밌었던 건 팀원 전체의 MBTI를 평균내서 팀 성격유형을 정하는 거였는데, 이 팀의 결과가 무려 인팁이었다. 난 살면서 오타쿠 집단 밖에서 인팁을 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한 방에 거대한 인팁 집단에 들어와버린 것...
그래서 내가 꽤 만족스럽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건가 싶고
그리고...
나의 개인 검사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팀원들 중에서 제일 극단적이었다.
그리하여 공개합니다 어른도그의 MBTI 검사 결과지
나는 이 때 검사에서 T-F 테스트 하는 것 같은 문항 체크하면서 헙... 나 제법 F같은 답을 하는 것 같은데. 인프피 나오는 거 아니냐... 라는 생각을 했었고 어림도 없이 매우 분명한 T가 나왔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은 조금 함... 특히 N과 T는 이전에 비하여 꽤 분명도가 떨어진 것 같다. 철이 들었다기보다는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마모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S-N에서 낮게 나온 수치들에 해당되는 반대쪽 특성이 실리적·효율 추구고, T-F에서는 조화·관대함이라는 게... 조직에서 필요한 가치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뭔가 뭔가임
최근 나는 나의 이상주의적 성격들이 INTP라는 결과에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왜요?라서... 그건 일단 그렇다 치고... 를 여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겠지 나는 막내니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아이디어 위주로 움직이고 싶다 지금은 여의치 않아도
감정소모나 주변 환경 때문에 타협하는 걸 최근엔 많이 하고 있지만
인팁이 인팁발산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그래서 례술충이나 싸패빌런 캐릭터 중에 그런 결과가 나오는 애들이 많은 걸지도
MBTI가 꼭 맞는 건 아니지만 (사실 믿고 말고 할 것도 없음 스스로 체크하는 거니까) 워낙 일관성 있게 극단적으로 나오다 보니 이런저런 성찰의 기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원하는 대로 결과 나오게 할 수 있는 테스트라고는 하지만 난 이번에 F가 안 나온 것도 꽤 충격적이었다니까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는 건 좋은 것 같아 확실히 생각하는 데에 도움이 됨.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8문항 나는무슨과일엠벼 이런 거 말고) 호불호라던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돈으로든 시간으로든 측정이 되는데 마음이나 성격은 내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올 때가 많으니...
정식 검사 언제 다시 받아보고 싶은데 기회가 애매하다... 또 공짜가 굴러들어왔으면
그리고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엠비티아이 궁예임
난 그냥 이런 걸 하고 논다
오우카와 코하쿠: INFP (확신)
마케지미 미디리: ESTJ
이자식들맨날싸울만했다고봄
오우카와 코하쿠에 대해서는 얼마나 확신하냐면
마치 어른핫도그가 그랬던 것처럼 검사 끝나고 이열~ 나 제법 T같이 답한 것 같은데 이번에 T 나오는 거아님? 하고 결과지 펼쳐보면 F(매우분명) 나오는 느낌일 것
카에데하라 카즈하: ISTP
호두: ENTJ
페이몬: ENFP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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